목회칼럼

고통이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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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택목사 날짜1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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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최고의 작가 필립 얀시와 세계적인 손 수술 외과 의사이자 나병 전문가 폴 브랜드가 공저한 『고통이라는 선물』에 나오는 글입니다.
   내 평생 가장 어두운 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신을 벗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준비를 끝냈을 때 끔찍한 생각이 무서운 힘으로 나를 강타했다. 발의 반쪽에 아무 느낌이 없었다. 의자에 털썩 앉았다. 내 마음은 무섭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아마 환상이었을 것이다. 눈을 감고 볼펜 끝으로 발꿈치를 찔러 보았다. 아무 느낌이 없었다. 발꿈치 주변에 뭔가 닿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어떤 메스꺼움보다도 더 무서운 두려움이 뱃속을 뒤틀어 놓았다. 마침내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인가? 나병을 다루는 사람들은 누구나, 나병의 첫 증상 중 하나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나병을 치료하는 의사에서 나병 환자로 비참하게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인가? 나는 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일어나서 무감각한 발에 힘을 주고 앞뒤로 무게 중심을 옮겨 보았다. 그리고 나서 옷 가방을 샅샅이 뒤져 바늘을 찾아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발목 바로 밑 살갗을 바늘로 조금 찔러 보았다. 아무 통증도 없었다. 반사 작용이 나타나는지 보려고 바늘을 더 깊이 찔렀다. 아무 느낌이 없었다. 바늘을 찔러 생긴 구멍을 통해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전율했다. 고통이 느껴지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 진료실에 있는 진료 차트들은 내 몸이 점차적으로 마비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줄 도표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었다. 일상생활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말 것이었다. 강아지를 쓰다듬는다든지, 부드러운 비단의 감촉을 속으로 느껴본다든지, 어린아이를 안는다든지 하는 이 모든 감각적인 일들이 곧 똑같이 느껴질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침내 날이 밝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불안과 절망에 빠져 있었다. 거울을 통해 면도하지 않은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병의 흔적을 찾기 위해 코와 귓불도 살펴보았다. 밤새도록 내 속에 있는 임상 의사가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그 병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감을 잡기 위해 감각을 상실한 부위를 정밀하게 표시해야 했다. 나는 앉아서 심호흡을 하며 바늘 끝으로 발꿈치를 찔렀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지금까지 마치 전기 충격처럼 생생한 그 통증만큼 유쾌한 감각을 느껴본 적이 없다. 나는 나의 어리석음에 큰 소리로 웃어댔다. 이제는 모든 것을 완전히 느낄 수 있다. 내가 몸을 구부린 채 열차에 기대앉아 있었을 때, 내 몸은 무게와 압력을 재분배하는 일상적인 불안정한 움직임을 지탱하기에도 힘겨운 상태였다. 일시적이었다! 밤새 그 신경이 원상회복되어 이제는 고통과 촉감과 추위와 더위에 대한 메시지를 충실하게 뱉어내고 있었다. 나병에 걸리지 않았다. 단지 피곤에 지친 여행자가 질병과 과로로 신경 쇠약에 걸렸을 뿐이다. 내 발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정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깊은 수렁을 지나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하나님, 고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병 전문가 폴 브랜드는 위와 같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고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을 싫어합니다. 도리어 고통을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을 만났을 때 당황하며 무너지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고통 가운데로 끌어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고통 없이 살아가게 한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가 싫어하고 저주라고 생각하는 고통을 주시는 것일까요?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말씀을 통하여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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